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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2 [생활] 수학은 부모의 인내가 필요하다. - 자기주도학습법

[출처] http://www.ddanzi.com/ddanzi/section/club.php?slid=news&bno=9213



참고 기다려주어야 자기주도학습법을 익힌다.

 

일본에서는 인간형을 곧잘 세 가지로 나눈다. 오다 노부나가형, 도요토미 히데요시형, 도쿠가와 이에야스형. 모두 전국시대의 장군들이다. 이 세 가지 인간형의 차이를 이렇게 비유한다.

 

 

목소리가 아름답다는 새를 사왔다. 그런데 새가 도대체 울려고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는 목을 쳐라”형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새가 울도록 달래고 유도한다”형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형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작은 영지에서 태어났지만, 저돌적인 전략을 밀어붙이며 일본을 거의 통일했다. 하지만 부하의 반란에 휩쓸려 젊은 나이에 불에 타 죽었다. 그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을 통일했지만,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지는 못했다. 진심으로 충성하는 부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천하를 얻은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도쿠가와는 에도 막부 시대를 열었고, 그 후손은 260년 간 일본을 통치했다.

 

자녀 교육 유형도 이렇게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공부를 못하면 혼내고 야단치는 형, 공부를 하라고 달래고 상을 주며 유도하는 형, 공부를 할 때까지 기다리는 형. 나는 모든 일에 기다리는 형이다. 그래서 삼국지에서 곽가가 조조에게 조언한 말을 무척 좋아한다.

“천하를 얻으려면 천하를 안으려 하면 안 됩니다. 천하가 안겨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나는 아이들 교육에서 참고 기다리는 편이다. 그래서 수학만큼은 내가 가르친다. 참고 기다리는 방식으로 수학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과 일본 유학 시절을 합쳐서 10년 동안 수학 과외교사를 했다. 일본에서는 외교관이나 상사 직원 등 해외 주재원들의 자녀를 대상으로 수학 과외를 했다. 수없이 많은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 중에는 서울대 법대를 간 아이도, 서울대 공대를 간 아이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극적인 성공사례는 따로 있다.

 

내가 그 아이의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그 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일본 유학 시절이었고 주재원 딸이었다. 그 아이는 엄마가 수학을 포기한 아이였다. 엄마의 말인즉슨 “우리 애 수학 실력은 바닥이고, 수학을 싫어하고, 전혀 소질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 왜 과외를 하느냐?”고 묻자 “나중에 애가 컸을 때 과외 한 번 제대로 시켜주지 않았다는 원망을 듣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그래서 유명한 과외 선생을 부른 것이지만, 과외를 한다고 수학 성적이 올라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으니까, 적당히 아이랑 놀다가 가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아이를 3년 동안 가르쳤다. 내가 가르치는 동안 수학 실력이 비약적으로 좋아졌다. 수학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학이 너무 좋다며 Y대 수학과에 가려고 했지만 부모가 뜯어말려 Y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 (이른바 명문이라는 Y대다).

 

나는 그 아이를 어떻게 가르쳤을까. 실은 거의 가르치지 않았다. 내가 수업시간동안 한 일은 한 가지, 바로 “기다리기”였다. 중2의 아이에게 초등 4학년 수준의 수학문제를 내주었다. 그리고 완벽하게 혼자 힘으로 풀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처음에는 한 시간에 한 문제 푼 적도 많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조금 힌트를 주고, 기초 중의 기초에 해당하는 것(“삼각형의 내각의 합의 180도” 같은 것)만 설명해주고, 문제를 풀었을 때 박수를 치며 칭찬을 해주었을 뿐이다.

 

몇 개월 걸렸지만, 그 아이는 서서히 자신의 힘으로 수학 문제를 푸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문제를 푸는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그러다 결국 수학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뒤로 수학 실력이 일취월장하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이런 방식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었다. 과외를 맡긴 부모들은 빨리 성적이 올라가는 것을 원한다. 중2 아이가 두 시간 동안 초등 4학년 문제 두세 개를 풀었다고 하면, 바로 과외선생을 교체했을 것이다. 그 아이는 부모가 포기한 아이이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택할 수 있었다.

 

이 방법은 아이가 초등학생이라면 어느 부모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옆에 나란히 앉아 격려해주면서 혼자 힘으로 완벽하게 문제를 푸는 것을 기다려주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비싼 과외선생을 불러놓고 이런 일을 시키기는 돈이 아깝지 않은가.

 

가능하다면 아빠에게 이런 일을 하도록 권하고 싶다. 엄마들은 이런 방식을 잘 소화하지 못한다. 아이가 문제를 풀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으면, 속상한 마음에, 안타까운 마음에, 조급한 마음에 문제를 풀어주어 버린다. 풀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아빠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일주일에 이틀, 하루에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여의치 않으면 주말에 몰아서 하면 된다. 몰았다고 해 봐야 두 시간이다. 1분이면 풀 수 있는 문제를 10분, 20분 끙끙거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 그래도 참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아이가 아무리 엉뚱하게 풀어도 화를 내지 말고 온화한 얼굴로 격려를 해주어야 한다. 자신의 힘으로 풀어야 진짜 실력이 붙기 때문이다. 아이가 수학을 잘하게 되는 것은 기다림과 인내의 미학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주도학습을 익히는 데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P.S. ‘자기주도학습법’을 가르쳐준다는 학원도 많다. ‘자기주도학습’을 남에게 배운다는 것이 모순처럼 들리지만,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해 본적이 없는 아이라면 학원에서 방법을 배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3개월, 아니 후하게 잡아주어서 6개월 내에 눈에 띄는 효과를 보지 못한다면? 그래서 계속 다녀야 한다고 학원에서 주장한다면? 과연 그곳은 ‘자기주도학습법’을 가르칠 능력이나 의지가 있는 것일까?

어린이경제교육전문가 김지룡 (http://blog.naver.com/edu_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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